무소유 (法頂스님)

He's Column/Book review 2011/03/29 15:36 Posted by 깜냥 윤상진
 

일상에 지친 당신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.
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아래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.
마음이 차분해지고 복잡한 머리속이 비워지는 기분이 드실겁니다.


☞ 법정 론(法頂論)
 -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은 言語는 사실 소음이나 다름없다....(중략)... 우리의 영혼을 뒤흔드는 말은 장엄한 음악처럼 침묵에서 나와 침묵으로 사라져 간다.
 -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.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 엔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.
 -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....(중략)....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(無所有)의 역리(逆理)이니까.
 -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기보다, 흐트러지는 나를 내 자신이 거두어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.
 - 내 몸 안에도 자가용 변소가 있지 않느냐, 사람의 양심이 썩는 냄새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느냐?

☞ 나의 취미는
 - 골프는 인간의 죄를 벌하기 위해 “스코틀란드의 칼비니스트”들이 창조해 낸 전염병

☞ 가을은
 - 한낮에는 아무리 의젓하고 뻣뻣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해가 기운 다음에는 가랑잎 구르는 소리 하나에, 귀뚜라미 우는 소리 하나에도 마음을 여는 연약한 존재임을 새삼스레 알아차린다.... 낮 동안 바다 위의 섬처럼 저마다 따로따로 떨어져 있던 우리가 귀소(歸巢)의 시각에는 같은 대지(大地)에 뿌리박힌 지체(肢體)임을 비로소 알아차린다.
 - 사람이 산다는 게 뭘까? 잡힐 듯하면서도 막막한 물음이다. 우리가 알 수 있는 일은 태어난 것은 언젠가 한번은 죽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. 생자필멸(生者必滅), 회자정리 (會者定離), 그런 것 인줄은 뻔히 알면서도 노상 아쉽고 서운하게  들리는 말이다.

☞ 무소유(無所有)
 -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.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(籍)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.
 -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.
 - 며칠 후,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 주었다.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. 날 듯 홀가분한 해방감. 3년 가까이 함께 지낸 “유정(有情)”을 떠나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. 이때부터 나는 하루에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.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?.... 소유욕(所有慾)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.
 - “간디”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. “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....” 그가 무엇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는 것.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....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.

☞ 오해(誤解)
 - 남이 나를, 또한 내가 남을 어떻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. 그저 이해하고 싶을 뿐이지.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타인(他人)
 - 누가 나를 추켜세운다고 해서 우쭐댈 것도 없고 헐뜯는다고 해서 화낼 일도 못된다. 그건 모두가 한쪽만을 보고 성급하게 판단한 오해이기 때문에
 - 온전한 이해는 그 어떤 관념에서가 아니라 지혜의 눈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. 그 이전에는 모두가 오해일 뿐.

☞ 설해 목(雪害木)
 - 겨울철이면 나무들이 많이 꺾이고 만다. 모진 비바람에도 끄덕 않던 아름드리나무들이,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이면 꺾이게 된다. “가지 끝에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그 하얀 눈에 꺾이고 마는 것”이다.
 -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,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인 것을....

☞ 종점(終點)에서 조명(照明)을
 - 늘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. 그런데 우리는 오늘에 살고 있으면서도 곧잘 다음날로 미루며 내일에 살려고 한다. 생명의 한토막인 하루하루를 소홀히 낭비하면서도 뉘우침이 없는 것이다.
 - 일상이 지겨운 사람들은 때로는 종점에서 자신의 생을 조명해 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. 그것은 오로지 반복의 심화를 위해서....

☞ 탁상시계 이야기
 - 그 많은 사람가운데서 왜 하필이면 나와 마주친 것일 까. 불교적인 표현을 빈다면 시절인연(時節因緣)이 다가선 것이다.
 - 물건이란 본래부터 내가 가졌던 것이 아니고 어떤 인연으로 해서 내게 왔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떠나가게 마련이라 생각하니 조금도 아까울 것이 없었다.
 -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라기보다, 흐트러지려는 나를 내 자신이 거두어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.

☞ 동서(東西)의 시력(視力)
 - 나는 문득 내 육신에 대해 미안하고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. 평소 잘 먹이지도, 쉬게 하지도 못하고 너무 혹사만 했구나 생각하니 새삼스레 연민의 정이 솟았다.

☞ 회심 기(回心記)
 - 본래무일물(本來無一物)!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말, 공수래공수거(空手來空手去)

☞ 잊을 수 없는 사람
 - 해탈(解脫)이란 고(苦)로부터 벗어난 자유자재의 경지를 말한다. 그런데 그 고의 원인은 다른 데 있지 않고 집착에 있는 것이다. 물건에 대한 집착보다도 인정에 대한 집착은 몇 곱절 더 질긴 것이다. 출가(出家)는 그러한 집착의 집에서 떠남을      뜻한다. 그러기 때문에 축가한 사문들은 어느 모로 보면 비정하리만큼 금속성(金屬性)에 가깝다.
 - 내 것이네 남의 것이네 하는 분별이 없는 것 같았다. 어쩌면 모든 것을 자기 것이라 생각했는지 모른다. 그러기 때문에 사실은 하나도 자기 소유가 아닐 수 도 있는 것이다.
 - 그 고집스럽고 정정한 소나무들이 한 송이 두 송이 쌍이는 눈의 무게에 못 이겨 꺾이고 마는 것이다. 모진 비바람에도 끄덕 않던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 앞에 꺾이는 묘리(妙理)을 산에서는 역력히 볼 수 있었다.
 - 사람은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.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인 것이다.

☞ 미리 쓰는 유서(遺書)
 -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 걸음 한걸음 죽어 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,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, 생(生)과 사(死)는 결코 절연(絶緣)된 것이 아니다.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를지라도 “네”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.
 - 유서는 남기는 글이기 보다 지금 살고 있는 “생의 백서(白書)”가 되어야 한다.
 - 이 세상에 올 때에도 혼자서 왔고 갈 때에도 나 혼자서 갈 수밖에 없으니까, 내 그림자만을 이끌고 휘적휘적 일상(日常)의 지평(地平)을 걸어왔고 또 그렇게 걸어갈 테니 부를 만한 이웃이 있을 리 없다.
 - 생명의 기능이 나가버린 육신은 보기 흉하고 이웃에게 짐이 될 것이므로 조금도 지체할 것 없이 없애 주었으면 고맙겠다. 그것은 내가 벗어 버린 헌옷이니까. 물론 옮기기 편리 하고 이웃에게 방해되지 않을 곳이라면 아무데서나 다비(茶毘 : 화장)해도 무방하다. 사리(舍利) 같은 걸 남기어 이웃을 귀찮게 하는 일을 나는 절대로,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.

☞ 인형(人形)과 인간(人間)
 - 산다는 일이 일종의 연소요, 자기 소모라는 표현에 공감이 간다.
 - 우리에게 대지는 영원한 모성(母性), 흙에서 음식물을 길러 내고 그 위에다 집을 짓는다. 그 위를 직립 보행하면서 살다가 마침내는 그 흙에 누워 삭아지고 마는 것이 우리들 인생의 생태. 그리고 흙은 우리들 생명의 젖줄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.
 - 그러기 때문에 흙을 가까이하며 자연 흙의 덕을 배워 순박하고 겸허해지며, 믿고 기다릴 줄을 안다. 흙에는 거짓이 없고 무질서도 있을 수 없다.
 - 산다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이 현상, 따라서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느냐에 의해 삶의 양상은 여러 자지로 달라질 것이다.

☞ 영혼의 모음(母音)
 - 똑 같은 물을 마시는데도 소가 마시면 우유를 만들고, 뱀이 마시면 독을 만든다는 비유가 있다.
 -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도 꿰뚫어 볼 수 있는 그 슬기가 현대인에겐 아쉽다는 말.
 - 네가 나를 길들이면 내 생활은 해가 돋은 것처럼 환해질 거야, 난 어느 발소리하고도 다른 발소리를 알게 될 거다, 네 발자국 소리는 음악이 되어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.
 - 사람들이 이제 무얼 알 시간조차 없어지고 말았어, 다 만들어 놓은 물건을 가게에서 사면되니까. 하지만 친구를 팔아 주는 장사꾼이란 없으므로 사람들은 친구가 없게 됐단다.
    친구가 갖고 싶거든 날 길들여!
 - 생야일편부운기(生也一片浮雲起) 사야일편부운멸(死也一片浮雲滅), 삶은 한 조각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, 죽음은 한조각 구름이 스러지는 것이라고
 -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샘물이 고여 있어서 그렇듯이.

☞ 본래무일물(本來無一物)
 - 따지고 보면, 본질적으로 내 소유란 있을 수 없다.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물건이 아닌 바에야 내 것이란 없다, 어떤 인연으로 해서 내게 왔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가버리는 것이다, 더 극단적으로 말한다면, 나의 실체(實體)도 없는데 그 밖에 내 소유가 어디 있겠는가, 그저 한동안 내가 맡아 있을 뿐이다.

☞ 상면(相面)
 - 인간은 저마다 혼자도, 설사 칫솔을 같이 쓸 만큼 허물없는 사이라 할지라도 그는 결국 타인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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